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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쟁, 30년 전쟁과 쉑스피어

신풍 2021. 3. 1. 15:37

프랑스와 영국은 프랑스 영토를 두고 휴전과 전쟁을 되풀이하면서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단속적()으로 전쟁을 벌였다.영국은 1066년 노르만왕조의 성립 이후 프랑스 내부에 영토를 소유하고 있어 수시로  양국 사이에는 분쟁이 계속되었다. 1328년 프랑스 카페왕조의 샤를 4세가 남자 후계자가 없이 사망하자 4촌 형제인 발루아가()의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올랐다.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모친이 카페왕가 출신(샤를 4세의 누이)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스의

필리프 6세는 프랑스 내의 영국 영토인 기옌(가스코뉴) 지방의 몰수를 선언하고 1337년 에드워드 3세는 필리프 6세에게 전쟁을 선언한다.

프랑스는 백년전쟁 초기 귀족, 왕족 내부분열에 대포로 장착한 영국군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한다. 위기극복의 주인공은 17세 소녀 잔 다르크. 1429년 잔다르크는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프랑스군을 이끈다. 1430년 5월에 영국과 내통하는 프랑스 부르고뉴파 군사에게 사로잡혀 영국군에게 넘겨져 마녀라는 누명을 쓰고 화형당했다. 이후 프랑스군의 선전으로 인해 1453년, 영국은 프랑스 북부 지방의 도시 칼레를 제외한 프랑스 영토에서 패배하고 물러난다. 프랑스는 백년전쟁을 치르면서 왕을 중심으로 하는 왕권과 민족의식이 강해졌다. 프랑스는 영국과 백년전쟁에서 왕족과 대귀족들이 사망해 샤를 7세 때부터 쉽게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

 

영국은 영토가 대폭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친과 대귀족들은 거의 살아남아 또다른 내부전쟁을 시작한다. 백년전쟁 참전병들도 돌아갈 농토가 없어진 경우 뗴거리로 왕실종친과 대귀족의 사병으로 전락했다.

에드워드3세의 아들중 랭커스터공(붉은장미), 요크공(흰장미) 가문이 왕위를 두고 겨루게된다. 랭커스커 가문의 잉글랜드 왕인 헨리 6세가 1440년에 전통의 명문 이튼 칼리지(Eton College)의 설립과 케임브리지 대학 내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의 웅장한 예배당을 건립하다가 파산했고 1453년경에는  외조부인 프랑스의 샤를 6세의 혈통 때문인지 정신 이상증세를 보인다.

헨리 6세의 조카벌인 요크공 가문이 워릭(Warwick : 국왕 제조자란 별명을 가진 자)의 지지하에 헨리 6세를 감금하고 요크가의 19세된 젊은 에드워드 4세(1461~1483년)를 왕으로 세운다. 장미문장을 사용하는 두 가문이 원수가 된셈이다. 에드워드 4세는 워릭이 다시 랭커스터 가문을 왕위에 올릴 의도로 반란을 일으키자 1471년 그를 제거하고 헨리 6세와 왕세자까지 런던탑에서 살해했다.

당시 하원은 귀족들의 독점물이 되어 강력한 절대왕정의 배경이다. 의원을 뽑는 선거인단들을 연 수입 40실링(20파운드)의 토지를 가지고 있는 자유민들에게만 주는 부패(과소) 선거구(Rotten Borough : 유권자가 격감하여 유력자가의 사물로 된 선거구)로 운영되었다. 에드워드 4세는 1483년 아들 에드워드 5세에게 왕위를 물려 주고 동생인 글로스터 리처드(Gloucester Richard)에게 섭정을 부탁한 후 세상을 떠났다. 글로스터 리처드는 에드워드 5세와 동생을 런던탑에서 살해한 후 리처드 3세(1483~1485년)로 등극했다. 조카를 죽이고 등극한 세조같은 인간이다.

요크가의 연이은 비행에 수십년간 숨죽여온 랭커스터가문 출신을 어머니로 둔 리치먼드공 헨리 튜더가 리처드 3세와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헨리 튜더는 요크 가문 에드워드 4세의 딸인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면서 장미전쟁을 마무리한다. 헨리 7세(1485~1509년)로 등극하면서 튜더왕조를 만든다. 

조카를 죽이고 패륜으로 왕이된  리처드 3세는 고작 32세에 죽는다. 도덕도 가문도 날려버린 그는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년)에 의해 세 작품에 등장한다. 『 헨리6세 』,  『 리처드3세 』에서 모두 추악한 모습을 한 악역으로 그려졌다. 결국 세계에서도 추악한 인물로 명성을 떨치게 된 셈이다. 

지난 2012년 500여년 이상 사망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던 리처드 3세의 유골이 지방도시 레스터 주차장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참으로 끝까지 조롱받는 삶이다. 인생 잘 살아야한다.

세익스피어는 튜더 왕조(1485~1603)에서 스튜어트왕조(1603`~1688)로 절대왕정이 확립되는 시기의 작가다. 그의 작품은 대개 왕권강화에 동조한다. 해외식민사업, 왕권찬탈을 다루는 소재도 당시 영국의 현실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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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00년전쟁->잔다르크->장미전쟁->리처드3세->세익스피어|작성자 Etran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