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사에 등장하는 장미전쟁을 주도한 가문입니다
요크 가문House of York:
요크 가문은 에드워드 3세의 넷째 아들인 초대 요크 공작인 에드먼드Edmund로부터 시작된다. 이 가문은 순수하게 에드워드 3세의 부계 계통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요크 가문은 왕위 계승에서 언제나 에드워드 3세의 직계라는 주장을 펼 칠 수 있었다.
1대 요크 공작-랭리의 에드먼드Edmund of Langle(초대 캠브리지 백작이기도 하다)1341-1371
에드워드 3세와 에노의 필립파 Philippa of Hainault 사이에서 태어났다. 요크 가문의 창시자이다.
에드워드는 카스틸랴의 이사벨과 사이에 2남 1녀를 낳았다. 이사벨라는 랑카스터 공작부인 콘스탄스의 여동생이다.
1.노리치의 에드워드Edward of Norwich, 2nd Duke of York
2.코니스버그의 리처드Richard of Conisburgh, 3rd Earl of Cambridge헨리 5세에 의해 반역죄로 처형됨. 요크 가문의 왕인 에드워드 4세와 리처드 3세의 아버지이며, 에드워드 5세의 할아버지이다. 헨리 7세 이후 잉글랜드 and all succeeding monarchs of England after King Henry VII.
3.요크의 콘스탄스Constance of York (앤 네빌 여왕Queen Anne Neville의 선조)
2대 요크 공작-노리치의 에드워드Edward of Norwich
아쟁쿠르 전투Battle of Agincourt에서 전사함. 랭리의 에드먼드와 카스틸랴의 이사벨 사이에서 태어났다. 에드워드의 할아버지는 에드워드 3세이고, 외할아버지는 카스틸랴의 페드로이다. 1402년 요크 공작을 계승하였다. 에드워드는 모훈의 필립파Philippa de Mohun와 결혼하였으나 슬하에 자녀가 태어나지 않았다. 이 결과 요크 공작령은 그의 조카인 리차드 플란타지넷 Richard Plantagenet으로 넘어가게 된다. 리차드는 에드워드의 동생인 리차드의 아들이다.
코니스버그의 리처드, 3대 캠브리지 백작Richard of Conisburgh, 3rd Earl of Cambridge
2대 요크 공작 에드워드의 동생. 형이 아쟁코르에서 전사함으로서 요크 가문의 대를 잇게된다. 사촌인 앤 모티머Anne Mortimer와 결혼하였다. 앤 모티머는 두 번째 아이를 낳고 사망하였다. 둘 사이에는 1남 1녀가 있다.
1.캠브리지의 이사벨, 에식스 공작부인Isabel of Cambridge, Countess of Essex
3대 요크 공작 리처드Richard Plantagenet, 3rd Duke of York
3대 요크 공작-Richard Plantagenet1411-1460
시셀리 네빌Cecily Neville과 결혼하였다. 시셀리 네빌은 1대 웨스트몰랜드 백작인 랄프 네빌Ralph Neville, 1st Earl of Westmorland과 조안 뷰포트 Joan Beaufort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안 뷰포트는 모계로 거슬러 올라가면 초대 랭카스터 공인 갠트의 존John of Gaunt, 1st Duke of Lancaster과 캐더린 스윈폴드Katherine Swynford가 조부모祖父母가 된다. 갠트의 존은 에드워드 3세의 셋째 아들이다.
시셀리는 15세기 잉글랜드의 ‘킹 메이커’인 16대 워릭 백작인 리차드 네빌 Richard Neville, 16th Earl of Warwick의 고모이기도 하다.
리처드는 에드워드 3세의 후손 가운데 가장 걸출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백년 전쟁 말기에 프랑스에서 다채로운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리고 잉글랜드에서는 정신병 증세가 있던 헨리 6세의 호국경Lord Protector으로 임명되었다. 광기에 빠진 헨리 6세를 대신하여 잉글랜드를 다스렸지만 이로 인해 장미전쟁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리처드는 헨리 6세의 왕비인 앙쥬의 마가렛과 대립하게 된다. 리처드는 에드워드 4세와 리처드 3세의 아버지이다. 그는 왕위 쟁탈전에서 패배한 뒤 그의 시신은 종이 왕관이 씌워진 채 모독을 받았다.
리처드는 부계로는 에드워드 3세로 거슬러 올라가고, 모계로는 4대 마치 백작인 로저 모티머와 Roger Mortimer, 4th Earl of March 알리아노르 홀랜드 Alianore Holland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치 백작 가문은 에드워드 3세의 둘째 아들인 안트워프의 라이오넬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므로 리처드는 에드워드 3세의 혈통 가운데서 두 명의 아들의 피가 섞인 셈이다. 앤 모티머와의 사이에서 4남 3녀가 있다.
1.요크의 앤, 에섹터 공작부인Anne of York, Duchess of Exeter
2.요크의 조지George of York. 첫 돌을 보낸 후 사망.
3.에드워드 4세Edward IV, King of England
4.루슬란드의 에드먼드Edmund, Earl of Rutland
5.요크의 엘리자베스, 서포크 공작부인Elizabeth of York, Duchess of Suffolk
6.요크의 마가렛, 부르군디 공작부인Margaret of York, Duchess of Burgundy
7.조지 플란타지넷, 클라렌스 공작George Plantagenet, 1st Duke of Clarence
8.리처드 3세Richard III, King of England
제4대 요크 공작:에드워드 4세Edward IV, King of England
요크 가문에서 배출한 첫 번째 잉글랜드 왕. 왕이 되기 전에 4대 요크 공작, 7대 마치 백작, 7대 캠브리지 백작, 9대 얼스터 백작이었다. 그리고 황금양털 기사회Order of the Golden Fleece의 65대 기사이기도 하였다.
리처드 3세Richard III, King of England
요크 가문의 마지막 왕. 1485년 보스워스 전투에서 헨리 튜더에게 살해당하였다. 그가 보스워스에서 살해당했을 때 그의 어머니인 시셀리 네빌은 살아 있었다. 그녀는 기구하게도 자신의 남편과 네 아들이 죽는 것을 모두 보아야만 했다. 비록 그녀의 두 딸-엘리자베스와 마가렛-이 살아있었지만. 1486년 보스워스 전투가 마무리 된 다음해, 시셀리는 에드워드 4세의 장녀이자 자신의 손녀인 요크의 엘리자베스가 헨리 7세와 결혼하여 잉글랜드의 여왕이 되는 것을 보았다. 시셀리는 말년에 자신을 종교에 의탁하였다. 1495년 5월 31일, 영광과 회한이 교차되는 삶을 살았던 시셀리 네빌은 눈을 감았다. 그녀는 남편 리처드와 아들 에드먼드가 잠들어 있는 Fotheringhay Church에 안장되었다
랭카스터 가문House of Lancaster:England
2대 랭카스터 공작부인 블랑쉬Blanche, Duchess of Lancaster와 갠트의 존John of Ghant
블랑쉬는 에드워드 3세의 셋째 아들인 갠트의 존과 결혼하였다. 이 결혼으로 랭카스터 공작 가문의 작위는 갠트의 존이 상속받게 되었다.
1대 랭카스터 공작 갠트의 존John of Gaunt (Ghent), 1st Duke of Lancaster
갠트의 존은 플란타지네트 가문으로서는 처음으로 랭카스터 공작의 지위에 올랐다. 즉 부인인 블랑슈가 상속한 랭카스터 가문을 사위인 존이 정식으로 이어 받은 것이다. 이로서 랭카스터 가문은 존에 의해 다시 시작될 수 있었다. 갠트의 존은 블랑쉬 이외에도 캐더린 스윈폴드라는 정부가 있었다. 이 정부와의 사이에서도 아이가 태어났다. 이들은 당시의 관습으로 볼 때 서자였지만 존은 이들이 자신의 적자임을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존과 블랑쉬 사이에서 1남 2녀가 태어났다.
1.필립파Philippa는 후일 포르투갈Portuga의 여왕이 된다.
2.랭카스터의 엘리자베tmElizabeth of Lancaster엑시터의 공작부인Duchess of Exeter이 된다.
3.헨리는 후일 잉글랜드의 헨리 4세Henry IV Bolingbroke, King of England가 된다.
존과 카스틸랴의 카타리나 사이에는 1녀가 태어난다.
캐더린 스윈폴드와의 사이에는 3남 1녀를 낳았다. 그리고 캐더린은 첫 번째 결혼을 통해 1남 2녀를 낳았다. 그러므로 캐더린은 모두 4남 3녀를 낳은 셈이다. 이들 모두 장미 전쟁에서 자신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토머스 스윈폴드Thomas Swynford
블랑쉬 스윈폴드Blanche Swynford
마가렛 스윈폴드Margaret Swynford는 캐더린이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자녀들이다.
갠트의 존이 캐더린 스윈폴드와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에게 뷰포트Beaufort란 성姓을 붙여주었다. 뷰포트는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영지이다.
1.존 뷰포트John Beaufort, 초대 서머셋 백작1st Earl of Somerset
2.헨리 뷰포트Henry Beaufort, 추기경Cardinal
3.토마스 뷰포느Thomas Beaufort, 초대 엑시터 공작1st Duke of Exeter
4.조안 뷰포트Joan Beaufort, 웨스트몰랜드 백작부인Countess of Westmorland
3대 랭카스터 공작 헨리 볼링브로크 Henry Bolingbroke
헨리 볼링브로크는 두 번 결혼하였다. 첫 번째는 메리 드 보훈Mary de Bohun이다. 이 결혼에서 5남 2녀가 태어났다. 장남 에드워드는 어릴 때 사망했기 때문에 둘째인 헨리가 장남의 지위를 계승하였다. 두 번째는 나바레의 조안Joan of Navarre이다. 나바레의 조안은 헨리 4세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브리타뉴 공작 장 5세와 결혼하여 9명의 자녀를 낳았다. 남편인 장 5세가 사망한 후에 헨리 4세와 결혼하였다. 이 결혼에서는 자녀가 태어나지 않았다.
1.Henry V of England
2.초대 클라랜스 공작 토마스Thomas of Lancaster, 1st Duke of Clarence, 토마스는 존 뷰포드의 미망인인 마가렛 홀랜드와 결혼하였다. 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대신 마가렛이 첫 결혼에서 얻은 6 자녀의 양부로 만족해야만 했다.
3.초대 베드포드 공작 존John of Lancaster, 1st Duke of Bedford, 부르군디의 용맹공 장의 딸 앤과 결혼하였다. 앤이 아이를 낳다 아기와 함께 사망하자 룩셈부르그의 Jacquettad와 결혼하였다. 그는 외도를 하여 얻은 딸에게 메리 플란타지네트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헨리 5세가 사망하자 그의 동생인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와 왕국을 통치하였다. 베드포드공은 프랑스의 섭정이 되어 프랑스 군을 여러번 격파하였다. 하지만 잔 다르크의 등장으로 위기에 봉착하였다. 이에 베드포드공은 반대세력을 결합하여 잔 다르크를 루앙에서 처형하였다. 헨리 6세의 대관식을 파리에서 거행하려 계획하였다. 그는 아라스 협약을 조정하는 도중 사망하였다.
4.초대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Humphrey, 1st Duke of Gloucester, 험프리는 왕들의 형제이며 아저씨로 알려져 있다.
5.블랑쉬Blanche는 팔라틴 선제후Electress Palatine에게 시집감
6.필립파Philippa는 덴마크, 노르웨이와 스웨덴 연합왕국의 여왕이 됨.
헨리5세Henry V of England
헨리 5세는 프랑스 발로아 왕가의 샤를 6세의 딸인 캐더린Catherine of Valois과 결혼하였다. 이 결혼에서는 후일 잉글랜드의 헨리 6세로 즉위하는 아이만이 태어났다. 캐더린은 헨리 5세 사후 오웬 튜더와 재혼하여 3남 2녀를 낳았다. 헨리 6세는 광기로 사망한 프랑스의 샤를 6세의 외손이다. 이런 혈통적인 연관성 때문인지 헨리 6세도 후에 발작을 일으키게 된다.
1.헨리 6세Henry VI of England
아래는 캐더린과 오웬 튜더 사이에서 낳은 자녀들이다.
1.토마스 튜더Thomas Tudor, 웨스터민스터 수도회의 수사가 되었다.
2.마가렛 튜더Margaret Tudor,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사망하였다.
3.초대 리치먼드 백작 에드먼드 튜더Edmund Tudor, 1st Earl of Richmond, 마가렛 뷰포드와 결혼하였다. 여기서 태어난 아들이 후일 헨리 7세로 즉위한다. 에드먼드는 헨리가 태어나기 전에 사망하였다.
4.Tacina Tudor
5.초대 베드포드 공작 재스퍼 튜더Jasper Tudor, 1st Duke of Bedford, 초대 리버스 백작 리처드 우드빌의 딸인 캐더린 우드빌과 결혼하였다. 캐더린 우드빌은 에드워드 4세의 처형이다. 재스퍼는 합법적인 적자는 없고 여러 명의 서자를 낳았다. 그 가운데 하나인 조안 튜더가 올리버 크롬웰의 선조이다.
6.오웬 튜더Owen Tudor, 웨스터민스터 수도회의 수사가 되었다.
헨리6세Henry VI of England
헨리 6세는 앙쥬의 마가렛Margaret of Anjou과 결혼하였다. 이 결혼에서 장차 왕위를 이을 웨스터민스터의 에드워드Edward of Westminster, Prince of Wales만을 낳았다. 에드워드는 후일 튜크스베리 전투Battle of Tewkesbury에서 요크 가문의 에드워드 4세와 왕관을 놓고 일전을 벌였지만 패배하여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