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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에서 한성판윤, 형조판서 좌찬성까지 오른 반석평 이야기

신풍 2021. 3. 31. 18:20

수필 요약) 노비에서 한성 판윤, 형조판서, 좌찬성까지 오른 반석평

          - 행박, 시인, 수필가, 문학 평론가   인송 박정웅  

 

조선 중종 때 명신으로 성품이 온유, 겸손했고  문무 겸전했으며

 청백리로도 유명했던  반석평(潘碩枰,?-1540)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충북 음성군 원남면에서 태어났다.

1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그의 모친 

장씨가 반석평 등 아들 3형제를 데리고 서울로 이거했다.

반석평은 원래 양반 가문이었다고 하나 먹고 살기 위해 이 참판집 종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인간이지만 인간 대접을 못 받을 노비신분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뭇 사람이 그 당시 종 신분을 이유로

자기를 멸시, 천대한다할지라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기어이 사람 값을 한번 해봐겠다고 결심했다.

자신의 마음공부와  학문적인 성취를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거듭했다.

창조주 하나님도 감동하여 이런 사람에게 새 삶의 기회를 주셨다.

 

 주경야독으로  학문에 정진한 그를 본 이 참판은

종이지만 자기 친 아들 이오성과 똑같이 시,서를 가르쳤다.

참으로 좋은 주인을 만나  그 당시 종신분으로는

상상도 못할 엄청난 행운을 누렸다.

 

이제 더 가르칠 것이 없다고 판단한 주인 이 참판은

아무 조건 없이 그의 종 문서를  불태워  종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고

아들 없고 재산 없는 어느 양반집

수양 아들이 되도록 직접 소개해 주었다.

 

이리하여 종에겐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그가 

양반 신분으로 깜짝 변신하여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는 당당하게 급제하여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하급 벼슬을 몇차례 거친 후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

전라, 경상 ,충청 , 함경도 관찰사, 평안감사, 한성판윤(현 서울 특별시장)

을 거쳐 공조판서, 형조판서(법무부 장관급)로까지 영전했다.

그는 조선 전기에  8도 관찰사를 모두 거친 2명 중 1인이었고

행정의 달인이었으며 병법에도 밝아 문무겸전한 큰 인물이었다. 

 

어느 날이다. 그가 한양 거리를 지나다가

자기와 함께 글 공부 했던 옛 주인 이 참판의

아들 이오성(李五成)이 거지 행색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즉시 그 사람에게 큰 절을 하며

 

"어르신 저를 몰라 보시겠습니까? 저는 당신의 종  반석평이라는

놈이올시다."라고 했다.

 

백주 대낮 한양 대로에서 형조판서 대감이 거지 같은 사람 앞에

넙죽 엎드려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그 당시 관례에 의하면 자기의 노비 신분을 밝힌다는 것은 곧

지금까지 쌓아올린 자기의 모든 지위를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임금을 속였다는  죄명을 받고

심하면 죽임을 당하였다.

 

그가 어찌 그만한 사리를 모를 사람인가? 그러나 그는

종 신분에서  이만큼  출세 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우선 자기를  해방 시켜준 옛 주인댁 은혜부터

갚아야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갸륵한 반 판서(장관급)의 인격에 크게 감동한 고관들의 간곡한 건의를 듣고 

중종 임금은 반석평을   면천해주고  그의 사직서도   반려시켰다.

오히려 그가 추천한  옛주인 아들  이 오성이

사옹원 별좌( 궁중에 최고급 도자기를 구워 납품하는 관청의 우두머리)라는

벼슬을 얻게 되었다.

그후 반석평은 더욱 승진하여 종1품(부총리급)

좌찬성까지 역임하였다고 중종 실록에 그 미담이 기록 돼 있다.

 

또한 반석평은 전라도 광주에서 관찰사로 근무하면서

많은 선정을 베풀고 백성들과 쌓은 각별한 정과 인연 때문에

광주(光州) 반(潘)씨 시조가 되었다.

그 후손들 중에도 많은 걸출한 인물이 배출 되었다.

전 유엔 사무총장인 반기문 총장도 그의 직계후손이다. 

 

그는 어떤 불우한 상황에 처해서도 인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꿈과 열정을  품고 정진하였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받은 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자신의 죽음과 안위를 돌보지 않았다.

그의 삶과 인격을 통하여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느낄 수 있는 멋진 영적 향기를 맡을 수 있다.

 

*** 정보 추적 여담 : 반석평의 고향인 충북 음성군 원남면에는 지금도

                            반석평의 묘가 있다.

                           조그마한 시골 벽촌이지만 반석평의 정신을 이은 인재들이

                           많이 배출 되었으니  1)전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 총장

                          2)전 주일대사, 교통부 장관 최경록  3)김진영 전 국회의원

                           4) 주병덕 전 충북도지사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